힐러리 클린턴도 처음부터 1등, 최고는 아니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20여쪽의 보고서를 써오라고 했던 숙제를 28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할 정도로 물론 정말로 노력하는 학생이었고, 어려서부터 항상 소위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 그룹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전교에서 한 15등쯤 했을 뿐 지금의 힐러리를 생각해볼 때 기대이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였다. 상황은 미국의 유명사립대학인 웨슬리여대에 입학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의 자녀였던 힐러리에 비해 많은 학생들이 부유층자녀들이어서 외모나 옷차림새하나하나가 힐러리와 비교되었으며 거기에다가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힐러리가 썼던 편지에는 기죽고 긴장하고 겁에 질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지만 영원히 뒤쳐질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그녀지만 그녀도 한때 수많은 이들에게 뒤쳐진 듯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었다. 돈이 많은 재벌가집안의 딸도 아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엘리트인 집안의 딸도 아니었던 그녀가 어떻게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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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가정환경은 안정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힐러리의 가족은 아버지 휴 로댐의 특이한 성격 때문인지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유별난 가족이었다. 힐러리의 아버지 휴 로댐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열등감 때문에 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 도로시 하웰과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조차 무자비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였다.


반면 힐러리의 어머니인 도로시 하웰은 휴 로댐의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도로시는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척들 사이에서 성장해서 열등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쾌활한 성격을 가져 역경을 극복해내는 능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남편과는 대조적으로 자식들에게 애정과 칭찬을 베풀며 온화한 성품으로 자식들을 대했다. 이런 어머니의 따뜻함이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힐러리와 형제들을 보호하고,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시 하웰도 그저 온화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변화시켰으며 불화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관심을 돌릴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힐러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도 아끼는 딸, 힐러리에게 물의 가르침과 불의 가르침을 가르쳤다. 물의 가르침은 ‘수평을 유지하라’ 라는 것이다. 수평기속의 기포를 예를 들면서 수평을 잃었을 때의 기포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며 항상 마음의 수평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불의 가르침을 가르쳤는데 이 것은 3가지의 교훈으로 나뉜다. 그 3가지는 바로 ‘시련이 닥쳐도 반드시 살아남아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것’, ‘누가 너를 때리거든 더 세게 쳐라.’ ,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라.’이다. 이런 가르침은 힐러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게 되었고, 이 것은 훗날 그녀가 정치인으로 성장할 때에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게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다.


이런 상반되는 어쩌면 위험한 가정교육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온 힐러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웨슬리여대로 진학하게 된다. 처음 그녀가 웨슬리여대에 입학했을 때는 집에 전화해서 여기서 못 버티겠다고 할 정도로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열등감의 늪에 빠져 지겹고 괴로운 대학생활을 보냈었다. 정치학에 관심이 있던 그녀는 정치계로 뛰어드려는 결심을 한 이후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적 위기에 도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똑한 웨슬리여대생이었지만 내면에 가지고 있던 고민을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힐러리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내면에 도전하고 극복한 후부터는 자신이 목표를 세운 것을 하나하나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변호사로서의 성공, 연애, 결혼,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성공, 그리고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온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서의 도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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